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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정보 '첫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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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송민정 댓글 0건 조회 1,857회 작성일 13-04-1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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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최근 '2013 장애인고용 인식개선 작품현상공모전' 입상작을 발표했다.

앞서 공단은 장애인고용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고용촉진 강조기간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에세이,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모를 실시해왔다.

올해로 22회를 맞은 작품현상공모전의 주제는 ‘장애인고용’으로 에세이, 인쇄매체디자인, 사진, 환경 및 실내디자인 등 네 분야 입상작 총 27점이 결정됐다. 본지는 환경 및 실내디자인을 제외한 입상작을 분야별로 소개할 예정이다. 네번째는 에세이 분야 장려 작품.

“첫날의 기억”
김대섭(남, 37세, 서울 성북)

어제가 16일이었으니 오늘이 17일이겠지. 새로운 아침이건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나 날씨도 어제와 같고 방문을 열고 나가면 그 모습 또한 어제와 같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 이런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파란 토요일도 있고 빨간 일요일도 있고, 숫자를 조합해 만든 월과 년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지질하고 궁색한 나의 하루가 오늘도 시작된다.

“엄마… 만원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다시피 했건만 몇 발짝 거리를 두고 앉아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의 호통이 냅다 쳐들어온다.

“니는 남들 다 취직하는데 그 나이 먹도록 뭐하다 맨날 요모양이고. 자슥아.”

시끄럽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엄마가 주머니에서 내 처지만큼이나 쪼글쪼글해진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준다.

내 나이가 어때서. 스물아홉이면 아직 청춘인데….

나는 책가방을 대충 등에 걸치고 도서관으로 향하다가 말머리를 돌려 PC방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도서관 구석에 박혀서 똑같은 책을 무한반복 쳐다보고 있을 내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야, 얼른 PC방으로 튀어와라. 스타나 한판하자”

나랑 비슷한 꼬라지의 철규놈을 불러냈다. 이놈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학수고대하는 놈이라 PC가 열을 내기도 전에 냉큼 달려와 옆 자리를 꿰찼다. 멋지게 한판을 내어주고 씩씩거리는데 이놈이 한마디 던진다.

“맞다. 니 오늘 발표 나는 날 아이가?”

이미 몇 차례 불합격에 익숙해있던 터라 날짜조차 잊고 있었는데 이놈 덕택에 지루함에서 잠시 벗어나 은근한 기대를 갖고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 속에서 나는 PC화면을 꽉 채운 듯 커다랗게 보이는 내 이름 석 자를 발견했다. 깜짝 놀랐지만 동명이인이 아닐까 싶어 철규놈에게 인사도 않고 집으로 달려가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완벽한 합격을 확인한 후, 나는 잡다한 공구들을 손보는 아버지를 끌어안고 빙빙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취업이 굉장히 어려운 시기인데다 130:1이라는 경쟁률이 보여주듯이 꽤 괜찮은 직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서울로 상경해 즐거운 인연을 맺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6년간의 직장 생활. 나는 나름대로 성실히 일했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몇몇 부서를 거치는 동안 어깨에 힘도 좀 들어갔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건지 일순간에 반전이 일어났다.

2009년 어느 여름날의 휴가. 푸름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청량한 날을 기가 막히게 잡아 나는 친구들과 계곡으로 향했다.

적당히 북적이는 사람들이 평상에 한 자리씩 진을 치고 있었고, 세를 얻지 못한 빈객들도 자갈밭에 돗자리를 깔고 여느 진영 못지않게 즐거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여름에 물을 조심하라던 당연한 점쟁이의 말을 왜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을까. 한참을 헤엄치며 놀다가 저쪽 한 귀퉁이에 솟아오른 바위 위에서 사람들이 물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어디서 온 치기인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다이빙이란 것을 과감히 시도했다.

뭐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몸이 물 위로 붕 떠오르는데 팔과 다리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난생처음 119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흰 가운을 걸친 누군가가 와서 이미 내 것이 아닌 팔다리를 들었다 놨다 하더니 터무니없게도 페니스를 통해 뭔지 모를 긴 관을 들여보내는 게 아닌가. 이게 도대체….

이후 여러 종류의 검사를 마치고 지옥 같은 중환자실 생활을 거친 후, 나는 의사의 소견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사지마비…. 사지…마비라니. 일순간에 나는 어찌 막아볼 여유조차 없이 ‘1급 지체장애인’이 된 것이다.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온다더니 의사의 소견을 듣다보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인간은 환경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누가 얘기했던가. 다소 파격적인 감정의 변화를 거치고 재활병원으로 옮긴 후부터는 지금 생각해도 대견스러울 만큼 정말 열심히 운동에 매진했다.

긍정을 일으키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온갖 책과 문구들을 가슴에 담고, 나름대로 장애를 극복했다는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아 번데기에서 나비로 재탄생될 날을 기다리며 인고의 시간을 견뎠다.

몸뚱이 외에 별로 가진 것이 없고, 부양해야 될 노부모 생각에 내 목표는 오로지 ‘복직’이었다. 하지만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했던가.

정말 기막힌 사건이 전개되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직원들을 비롯한 많은 지인들의 도움을 받고, 살던 집 보증금을 빼고, 보험금을 보태니 얼마간의 돈이 마련되었다. 다치고 보니, 몸도 몸이지만 매달 간병비 등으로 300만원이 넘는 금액이 소리도 없이 계좌에서 사라지는 것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던 중, 소위 불알친구라는 고향친구의 솔깃한 제안에 어쩌다보니 거의 전 재산을 그 친구에게 맡기게 되었다. 구구절절 읊을 수는 없으나, 그런 저런 이유로 조금씩 투자권유에 응했고 결국 그놈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온 몸이 붉게 멍드는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을에 취해있었던 것이다. 길이 끊어진 낭떠러지에 선 것처럼 그나마 목표를 붙잡고 의욕적이던 감정이 무너지고 결국 자살기도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조차도 해내지 못하고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된 몸과 산 듯 죽은 듯 너덜해진 정신을 가지고 새벽을 맞이했다. 그날 하루는 정말 길었다.

그런 애증의 시간, 1년 3개월이 지나고 나는 드디어 직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한 달여를 매일 술에 빠져 살았었다. 더욱이 같은 병원에 있던 환자 중에 나와 같은 직종에 근무했던 사람이 끝내 복직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줘 내 미래에 대한 상실감을 배가시켰다.

삶은 이미 물위에서 방향을 잃은 채 둥둥 떠 있는 종이배 신세였다. 헌데 그즈음, 소식을 전해들은 친한 벗들과 직원들이 십시일반 후원을 해주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나는 마치 줄타기하듯 위태로웠지만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계좌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마이너스로 향했고 그들의 후원에 대한 보답,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명분이 내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했다. 몸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길 바라며 추상적으로 운동을 했던 그 동안의 시간과 달리 복직에 대한 구체화가 필요한 마지노선에 다다랐다.

어쩌면 나를 나락으로 내밀었던 그 사건이, 내게는 목표로 빨리 다가가는데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

장애를 이겨냈다는 사람들의 수기를 보면 결국 ‘다행히’내지는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라는 요지로 종결됐다.

나는 비록 많은 준비를 못했지만 다행히 직업의 끈을 잡고 있었고 이건 그나마 다른 장애인에 비하면 다행스럽고 쉬운 길이었다. 일부러라도 그렇게 믿었다. 나는 포기한 동료환자를 나와 동화시키지 않고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여겼다.

계속 인사 관계자와 간부님께 전화를 하고 찾아가하면서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거부의사를 밝히진 않았지만 받아들이기에도 결코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귀찮을 정도로 두드리고 두드리다보니 2011년 어느 날, 마침내 목표로 삼았던 ‘복직’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기쁘기 한량이 없었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의식조차 못한 채 처음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처럼 기뻤다. 건강보험공단의 보조를 받아 전동휠체어를 준비하고, 사무실 근처에 조그만 월세를 얻고, 활동보조인을 알아보고, 기타 등등. 준비하는 것도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만만치가 않았다.

가진 돈도 없는데다 휠체어로 생활할 만한 적당한 방을 구하기도 하늘에 별따기였다. 애써 방을 구했더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집주인이 거부하는 일로 눈물도 찔끔거렸었다.

하지만, 그런 건 차지해두고라도 헛되이 흘려보낸 세월로 인해 ‘출근’이라는 두 글자가 너무도 두렵게 다가왔다. 6주간 훈련소생활의 해방을 만끽할 새도 없이 자대배치되기 전 두려움에 떨었던 군대시절이 떠올랐다.

마침내 복직하는 날, 마치 CG로 처리라도 한 듯 햇살이 육각모양으로 내리쬐고 그림자조차 숨긴 채 눈이 아린 원색으로 세상이 도배되어 있었다.

그에 힘입어 테세우스처럼 나는 필시 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하고자 했건만, 실은 거적때기가 벗겨질까 꼭 부여잡은 소인배로 요동치는 심장을 꽉 깨물고 있었다. 아는 직원의 동행을 만류하고 혼자서 건물 1층으로 들어섰다.

눈에 익숙한 민원 안내도우미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아…. 아니었다. 나는 너무 꼼꼼히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말았다. 병상에 누워있을 때 애써 씩씩하게 응원하고 갔던 직원들의 표정, 딱 그것이었다.

첫 대면을 그렇게 마치고 안으로 향하다보니 여기저기 아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얼굴에 살이 빠져서 그런지 아니면 단지 휠체어만 보였던지 많은 직원들이 그냥 스쳐지나갔고 간혹 알아보는 직원들은 대부분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좀 전의 안내도우미가 지었던 표정을 따라했다.

그 무리들을 스치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마침 나처럼 전동휠체어에 앉은 한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몸이 약간 뒤틀린 채 허름하게 앉아있는 그녀는 아마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아마비 같았다. 난 나도 모르게 뒤돌아서 다른 방향으로 휠체어를 몰아갔다.

난 달라. 저 친구랑 나는 다르다고. 괜히 곁에 있다가 같은 무리로 보여질까봐 나는 그녀를 피해 전동휠체어를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얼마나 갔을까. 옆으로 날 따르는 휠체어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멈춰서 고개를 돌려보니 그건 다름 아닌 내 모습이었다.

거울같이 잘 빠진 건물에 비친 내 모습은 아까 봤던 그녀와 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마치 몸살에 걸린 것처럼 불덩이 같은 열이 올라왔다. 부끄러웠다.

장애인이 됐음에도 나와 같은 다른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반인 그대로였던 것이다. 내가 이런데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오죽하랴. 나는 다시 뒤돌아서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다행히 그녀가 아직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러 그녀 옆에 찰싹 붙어 마음속으로 미안함을 표현했다. 자세히 보니 그녀와 난 정말 달랐다. 하지만 지금 다름의 의미는 아까 느꼈던 차별이나 인식의 썩은 내가 아니라 관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여러모로 다른 그녀의 모습이었지만, 내가 예전에 그랬듯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녀나 나나 아마 똑같아 보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강원래씨의 장애정도가 나보다 얼마나 덜한지, 서울대 이상묵교수가 나보다 얼마나 더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저 그들 눈에는 똑같은 휠체어일 뿐이고 이 셋의 삶의 질이 몇 배 아니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때로 TV에 나오는 기적적인 모습을 보고 희망의 메시지를 얻었다가도 비슷해 보이는 모든 장애를 동일시하며 노력해보라는 어쭙잖은 충고에 쓴 메시지를 뱉어버린 기억이 많다.

나의 복직소식에 누군가는 나를 롤모델이라 하고, 지방에 계신 아버지는 사경을 헤매던 모습만 연상하며 기적이라 하고, 곁에서 보는 직원들은 나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시선의 원경(遠境)에 따라 인식의 깊이에 따라 같은 대상이 전혀 다르게 비춰지는 것이다.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생각에 빠져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녀가 어눌한 말투로 “먼저 타세요.” 그런다. “아녜요. 먼저 타세요.”라며 휠체어 두 대가 한꺼번에 탈수 없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먼저 자리를 잡은 그녀에게 당연한 양보를 했다. 근데 우리가 서로에게 배려를 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이미 다른 사람들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꽉 차고 문이 닫히고 있었다.

“잠깐만요. 여기 타야 되니까 좀 내려주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입 밖으로 뱉지 못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피켓을 들고 관공서나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시위하는 모습을 TV에서 가끔 본 적이 있었는데 ‘저 사람들은 뭘 해줘도 더 달라고 계속 떼를 쓸 거야.’라며 부정적인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 기억때문인지 괜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강제적 배려를 요구하며 생떼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나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지금 내가 복직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활동지원제도, 교통편의 등등 모든 혜택들이 내가 비난했던 분들의 노력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씁쓸함을 뒤로하고 인사과를 거쳐 배치된 사무실로 향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다소 냉소적이거나 이상하게 쳐다보는 일부 직원들의 표정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내 책상을 차지하고 앉으니 하마터면 감격의 눈물까지 보일 뻔했다.

옆자리 직원이 소변 백을 차고 다니는지 모르고 내게 장애인전용화장실 위치를 친절히 알려줬고, 가끔씩 강직으로 손발이 떨리면 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손에 보조기를 끼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을 힐끔힐끔 곁눈질로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내게 주어진 업무는 다치기 이전에 내가 인정받았던 종류와는 달리 자료를 전산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아주 소량의 단순한 작업이었다. 다소 실망이 되기도 했지만 너무 당연한 일이었고, 그것이 그들 입장에서는 나를 위한 배려라고 좋게 생각했다.

복직 첫 날, 나는 그렇게 복잡 미묘한 생각과 감정들을 싸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우니 그것들은 더 복잡하게 머릿속에서 꿈틀거렸다.

고향같은 직장에 다시 돌아온 데 대한 감격과 설렘이 우선이었고, 나에 대한 무지와 냉소 그리고 경계를 어떻게 깨버릴지, 또한 나를 그저 안타까움의 대상이 아니라 능력으로서 인정받아야겠다는 등등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릿속이 온통 뒤엉킨 싵타래가 돼버렸다. 생각이 깊어지고 정리가 될 때쯤 벌써 여명이 찾아오고 있었다. 엉뚱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난 예전에 여성평등을 외치면서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 양자를 다 취하려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또한 약자라는 이유로 사회적 비용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사람들 역시 비난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의 출발점은 ‘우리’와‘그들’로 갈려지는 ‘경계’때문이었다. 여성은 우리의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딸이니 아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인들은 우리를 키워준 부모이자 대한민국을 일궈온 주인공들이기에 모시는 것 또한 당연하다. 장애인 역시 누군가의 가족이니 당연하고, 우리 중 제일 약하니 돕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더 이상 우리는 서로에게 ‘그들’이 아닌 당연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생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합의와 자연스런 친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장애인의 사회활동이 다양한 곳에서 절실히 요구되고 또한, 내가 할 일은 직장이란 작은 터전이지만 보다 많은 ‘우리’에게 나를 알리고,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종국에는 친화를 일으키는 일이다.

대부분의 곤충은 번데기에서 스스로 깨어나지만 개미 번데기는 어미가 고치를 찢어줘야만 탄생한다고 한다.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 대부분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세상에 나오기 힘든 개미 번데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회가 고치를 찢어준다면 ‘우리’ 속에서 일개미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2년 후 이른 아침, 볼에 와 닿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오늘도 행복한 일상으로 출근하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알기에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아직 나에 대한 무지와 편견, 경계를 깨트리진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게 되면서 가끔은 부끄러운 소변 백도 비워주고, 편견이라는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되었으며 경계가 허물어지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웃고 즐긴다.

업무량도 늘어 퇴근시간을 맞추기 벅찬 것이 뿌듯하다.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확실히 경제적인 면이 우선이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됨으로서 자존감을 높이는 큰 역할을 한다.

모든 숨은 장애인들이 고치를 찢고나와 나와 같은 일개미로서 세상을 활보하길 소망하며, 그 일에 ‘그들’이 아닌 ‘우리’가 함께 했으면 한다.

오늘은 기어코 설렁탕집 입구에 경사대를 놓도록 식당주인을 설득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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