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보 부정적 장애인 이미지 언제쯤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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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아람 댓글 0건 조회 1,788회 작성일 13-12-23 15:51본문
사십을 지나 오십을 넘겼어도 초등학교 동창들 간의 모임은 항상 즐겁다. 졸업하고 처음만나는 동창을 비롯해 사십 년, 삼십 년, 이십 년 그리고 짧게는 오년 만에 만남이라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삶의 고통이나 지병 따위는 마주잡은 손길과 부딪치는 술잔소리에 다 날아가 버린다. 정겨운 욕소리와 별명들이 마구 난무하고 마치 초등학교시절의 교실처럼 요란하다.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실명의 고통과 삶의 고달픈 짐을 잠시 풀어놓을 수 있었다.
내가 실명한 것이 입소문을 탔는지 한번 보고 싶다는 전화가 여기저기서 걸려 왔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동기회장의 안내로 삼십년 만에 동창 모임에 참석했다. 자리에 들어서자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의 환호성보다 잠시 모두들 머뭇머뭇 거리는 듯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마치 유명인사를 둘러싸고 기자들이 인터뷰 하는 모양으로 나에게 마구 질문을 퍼부었다. 더러는 내가 잡은 흰 지팡이를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냐는 안부보다 어떻게 해서 눈이 안 보이게 되었는가에 관심이 더 많았다. 실명하게 된 배경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지만 그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위기도 바꿀 겸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앞에 앉은 동창들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것만 빼고는 이전의 나와 아무 변화가 없다고 짐짓 유쾌한 척했다. 잠시 생각해보니 모두가 나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거나하게 취한 어느 동창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송경태 회비는 내가 내겠다!” 라고 외친다. 그 말을 다시 이어받은 만취한 또 다른 동창은 “여러분 송경태를 격려하기 위해 위로금을 모읍시다.” 하고 호탕하게 외쳐댄다. 이어서 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노래와 큰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나에 대한 동정심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했다.
내 주변이 썰렁해져 두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쓸어 보았다. 조금 전까지 실명한 나를 보고 두 손 잡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나를 감동시킨 친구들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친한 사람들 끼리 여기저기 모여 앉아 추억담을 늘어놓기에 한참이었다. 회비를 납부해주겠다, 위로금을 걷자고 소리쳤던 친구들은 자리를 떴는지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겠다던 친구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다른 친구가 빈 택시를 잡아주며 나를 태워주고는 내 손에 지폐 몇 장을 쥐어주었다. 서로 간에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했고 시각장애인 친구가 함께 했다는 것마저 잊어버린 양 모두들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돌아오는 택시 속에서 잠시 조금 전의 모임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호기심이 동정심으로 바뀌더니 무관심으로 끝나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었다. 정중하고 예의가 바른 비장애인들과의 모임에서도 자주 이런 개운치 못한 마음을 느끼곤 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처음엔 호기심 두 번째는 동정심 끝에는 무관심으로 끝나는 것이 패턴이다.
울프슨 버거는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여 그들이 어떻게 장애인을 정형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인간 이하의 동물, 두 번째 공포의 대상, 세 번째 조소의 표적, 네 번째 동정의 대상, 다섯 번째 자선의 짐, 여섯 번째 영원한 아이, 일곱 번째 환자, 여덟 번째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존재, 아홉 번째 위험적인 존재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영원한 아이’라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항상 미약하고 덜 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는 참으로 중요하다. 개개인의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무리지어 이미지를 평가받을 때 그 중요함은 더 커진다. 이런 때는 흔히 장애인 각자의 개성은 존중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인격마저 평가절하 된다.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은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과 멸시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울프슨 버그가 밝힌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언제쯤 사라질까? 막연한 희망일까, 아니면 영원한 숙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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