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보 보행 불가능, 오른손만 쓸 수 있는데 장애 5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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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아람 댓글 0건 조회 2,512회 작성일 13-11-19 12:06본문

# 하룻밤 사이에 장애 1급에서 장애 5급으로
하이마트 앞에서 전동휠체어로 이동하는 모습이 관찰됨.
휠체어로 옮겨 탈 때 부축해서 지지해 드리면 상체를 이동해서 옮겨 앉음.
식사 시, 수저나 젓가락 등 미세한 동작 어려워함.
반찬 집어 드리는 데 약간의 도움 필요함.
상의 단추를 끼워 드리고 바지끈 묶어 드림.
치약 건네주면 양치질함.
식사 시, 반찬 뚜껑 열어 드림.
화장실 이용 시 약간의 도움 필요함.
인천에 사는 민병욱 씨(51세)의 병원 경과기록지에 적힌 내용이다. 이는 당시 병원 의사가 기재한 것으로, 장애등급 심사를 내릴 때 장애진단서 등과 함께 등급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당시 장애진단서에는 좌측 편마비로 보행이 불가능하고 일상생활 수행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도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말 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민 씨는 2007년 심장장애 3급, 2009년 좌측 편마비로 뇌병변장애 2급으로 등록되어 중복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2012년 10월 재판정 기간 때, 뇌병변장애는 기존 2급에서 5급으로 등급이 하락하고 심장장애는 결정 보류 판정이 났다. 결국 뇌병변장애 5급 판정만을 받은 민 씨는 이에 대해 이의신청을 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장애 1급에서 5급으로의 등급 하락은 민 씨의 삶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 14만 원(2012년 기준 기초급여 94600원+부가급여 50000원) 남짓하던 장애인연금이 끊겼다. 대신 장애수당 2만 원이 그의 통장으로 입금됐다.
등급 하락으로 장애인콜택시(아래 장콜)도 더는 이용하지 못한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그는 장콜을 못 타니 이동이 제한됐다. 따라서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 하지만 장콜 이용을 하지 못해 병원조차도 가기 어렵다.
장애등급 하락 후, 몸 상태는 더욱 악화했다. 결국 올해 3월 말, 그는 다시 쓰러졌다. 뇌경색으로 왼쪽에만 마비가 있었으나 이번엔 양쪽 모두에 마비가 왔다. 그 외 언어장애, 인지장애, 혈관성 치매 등의 진단을 받았다.
“계속 재발하니깐 혈관이 망가져서 치매가 온 거예요. 심장 시술로 심장에도 스텐트(혈관 폐색 등을 막기 위해 혈관에 주입하는 것)가 여러 개 들어 있고 다리 동맥도 막혀서 다리에도 스텐트가 있어요. 죽상경화증(혈관 질환)이라고 다리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파요. 부종처럼 피부 누르면 일시적으로 움푹 들어가고.”
혈관성 치매로 그는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정확한 시기조차 잘 기억하지 못했다. 쓰러진 전후에 대한 기억도 사라졌으며 삶의 어느 한 부분의 기억이 통째로 없기도 하다. 상대방이 말을 빨리하면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또한 장시간 소통도 힘들다.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두세 시간 동안 말하는 것은 그에게는 '일주일 이상 컴퓨터를 켜둔 것과 같은 상태'란다.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이다.
차상위계층 의료보호 1종이었던 민 씨는 특정한 거주 공간 없이 병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의료보호 1종은 병원비는 면제되나 식비는 본인부담금을 내야 한다. 또한 한 병원에 머물 수 있는 기한이 3개월로 제한돼 그 후에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기에 병원에 머문 지 두 달이 넘어갈 때쯤이면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했다.
고정적인 수입 없이 장애인연금으로 살았던 민 씨는 한 달에 7만 원가량의 병원 본인부담금도 부담스러웠다. 지인들이 병문안 오며 음료수를 사온다고 할 때면 음료수 말고 돈으로 달라고 했다. 그렇게 근근이 살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5급으로 등급이 하락하면서 장애수당이 2만 원으로 떨어지자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그 돈으로는 병원 본인부담금도 낼 수 없었다.
“저녁에 잘 때, 아침에 눈 좀 못 뜨게 해달라고 빌면서 잤어요. 종교는 없지만 신이 있다면 나 여기서 살기 힘드니 하늘나라로 좀 데려가 달라고. 오늘도 잘 때 그럴 거예요. 눈 뜨면 지겨우니 눈 좀 뜨지 않게 해달라고.”
재심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재심사할 때 드는 모든 검사비용 역시 자부담이다. “친구들한테 억지로 뺏었죠. 죽을 때까지는 갚는다면서.” 검사비뿐만 아니라 병원 돌아다니는 차비, 서류 떼는 데 필요한 몇백 원, 몇천 원도 그에겐 부담이었다.

# “엄마 죽은 다음에 수급 신청하면 안 되겠니?”
민 씨의 부모님은 그가 어린 시절 이혼했다. 그 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하셨다. 민 씨는 몇 해 전 수급신청을 하려고 했으나 재혼한 어머니의 남편 재산을 이유로 수급 신청에서 탈락했다.
“난 그분 얼굴 본 적도 없고 전화 한 통 해본 적도 없는데. 내가 그 사람과 무슨 상관있느냐고 따지니 대한민국 법상 양부도 아버지에 해당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어머니께 자살하라고 해야 하느냐고 항의하니까 아무 말도 못 해요.”
구청에서는 서면질의서를 민 씨 어머니께 보냈다. 어머니는 민 씨에게 전화해 수급신청 했느냐며 아마 자신 때문에 안 될 것이라 했다. 이어 민 씨 어머니는 “나 죽은 다음에 하면 안 되겠느냐”라고 물었다. 결국 민 씨는 “돌아가시긴 왜 돌아가시느냐. 몇십만 원 차라리 안 받고 만다”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같이 죽어야겠다 싶어 작년에 시너 들고 구청에 찾아갔어요. 그리고 머리에 시너를 부었죠. 다들 피하더라고요. 죽기 싫은가 보죠. 난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내가 왜 80세 노모한테 생활비를 타 써야 합니까.”
그렇게 민 씨는 지난해에 수급자가 됐다. 그러나 그 수급비는 현재 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을 전전하며 살던 민 씨는 올해 8월, 요양등급 3급 판정을 받고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요양원을 비롯한 사회복지시설에 살면 수급비는 시설장이 위탁해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요양원이 '교도소와 같다'고 표현했다.
“저녁 7시면 텔레비전도 못 보고 담배도 못 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 소리 지르고 대소변 냄새에 잠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페브리즈 뿌리고 수면제 먹고 자요. 아침 7시는 돼야 담배라도 한 대 피지…”
그럼에도 요양원은 그가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안전하며 보호받을 수 유일한 곳이다.
▲공단 측 직원과 이야기를 하던 중 욕창으로 체위 변경을 하는 민병욱 씨.
# “1급 바라지 않는다. 장콜만 이용하게 해달라.”
올해 쓰러진 후, 몸은 차차 나아져 현재 민 씨는 말을 할 수 있으며 오른쪽 손목 부근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 5급으로 요양원에 거주하며 장애수당 2만 원으로 한 달을 살고 장콜을 이용하지 못한다.
요양원은 ‘요양’을 목적으로 하므로 치료행위는 일절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약을 타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야 한다. 그의 유일한 이동수단은 전동휠체어뿐이다. 하지만 전동휠체어가 가는 길은 울퉁불퉁해 그 충격은 그의 몸에 고스란히 흡수된다. 엉덩이에 난 욕창엔 '생살을 가위로 자르는 것 같은 고통'이 파고든다.
그가 예약한 날에 눈·비라도 오면 그날은 아예 나가지 못한다. 오른손밖에 사용할 수 없어 우산을 쓴 상태로 전동휠체어를 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 맞기 싫어도 방법이 없어요. 눈·비라도 맞으면 전동휠체어에 물 들어가서 수리비 나오니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어야죠. 약 떨어지면 또 재발하는 거고 그러다 가는 거죠. 그냥 제발 내일 아침에 눈 못 뜨게 해달라고 빌어요.”
그는 배변 조절도 되지 않는다. 침대에 옆으로 누워 요양사가 소변통을 대거나 스스로 통을 대어 배뇨한다. 그러나 그 동작을 수행하는 도중에 배뇨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대변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민 씨는 등급 하락에 대해 싸우고 싶었지만 싸울 방법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공단에 찾아가 항의하고 싶었지만 장콜을 이용하지 못하니 찾아갈 수 없었다. 활동보조제도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몇 달 전에야 알았다. 민 씨는 “장애인연금 받고 장콜을 이용할 수 있게 2, 3급만 되어도 좋겠다. 1급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최근 민 씨와 상담한 인천 민들레야학 박길연 교장은 “예산 논리로 장애등급을 매겨서 등급에 한해 서비스를 지원하는 게 문제”라며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주는 맞춤형 복지로 간다면 민 씨가 장애등급에 연연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이것은 장애등급제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 교장은 “민 씨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전혀 필요없는 사람인가”라고 되물으며 “오른손으로 밥을 스스로 먹을 수 있어도 누군가는 밥을 해줘야 한다. 휠체어에 오르내릴 때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누군가가 없으면 이 사람은 결국 계속 누워서만 생활해야 한다.” 라고 밝혔다.
요양시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요양원은 원래 목적인 요양만 하면 되지 왜 이용자의 일상생활까지 침범하느냐는 거다. 박 교장은 “요양원에 입소해 생활해야만 한다는 것은 중증장애인이라는 것으로 이는 활동보조 24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민 씨는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없다. 어머니는 재가해서 사시는데 갑자기 장애인 자식이라고 나타나면 고통스럽지 않겠느냐.”라며 “하지만 만약 살 집이 있고 활동보조 24시간이 된다면 당연히 밖에 나가서 살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공단 측 직원이 민병욱 씨의 장애진단서, 경과기록지 등의 자료를 보이며 민 씨의 등급 하락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내가 정말 장애 5급처럼 보이나?”
장애 1급에서 5급으로 하락했음에도 장애등급심사를 진행하는 국민연금공단 측에서는 어떠한 현장조사도 시행하지 않았다. 민 씨와 박 교장은 등급 하락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듣고자 지난 14일 국민연금공단 부평 계양지사를 찾았다.
이날 자리에서 공단 측은 장애등급심사는 서류 심사가 원칙이며 서류상 확인하는 방법이 없을 때에만 직접 진단, 동영상 촬영 등으로 확인한다고 답했다.
장애인지원센터 김학수 주임은 “장애등급은 고도로 교육받은 전문의가 심사한다. 전문의가 판단했을 때 의심이 들면 절대로 등급 결정을 하진 않는다.”라며 “여러 서비스 지원제도를 통해 확인하거나 추가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만약 이때 자료 제출을 하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으면 등급 외 판정이나 등급 하락이 아닌 ‘확인 불가’ 판정을 한다. 즉, 5급 판정이 났다는 것은 전문의가 어느 정도 확신하고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민 씨가 “내가 진짜 장애 5급이면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정말 5급처럼 보이나.”라며 억울함을 호소하자 장애인지원센터는 최장윤 차장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조정신청을 진행하게 되면 지사에서도 최대한 협조할 수 있는 부분 찾아보겠다.”라고 답했다.
박 교장은 “이것은 단순히 서비스를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피해보상도 진행할 것”이라며 “공단은 어떠한 이유로 민 씨가 등급하락 됐는지, 그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20일까지 문서 상으로 답변 달라”라고 요구했다.
민 씨는 이후 등급 변경 조정 신청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의신청은 원심에 관해 1회만 신청할 수 있는데 민 씨가 이미 이의신청을 한 바 있기에 현재는 조정신청만 가능하다.
앞으로 진행할 조정 신청을 위해 민 씨는 다시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이 돈은 또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장콜을 이용할 수 없는 민 씨는 요양원에서 병원까지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현재 민 씨는 공단 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공단은 이에 대한 문제까지 포함해 답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등급재심사로 말미암은 피해자가 민 씨뿐일까. 이 문제에 대해 현장 실태조사를 진행할 계획이 없느냐는 물음에 최장윤 차장은 “그것은 공단에서 하기엔 제한적인 문제”라며 “개인적으로는 범정부적, 범사회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즉, 지역 공단의 책임이라기보다 국가의 몫이라는 것이다.
장애 1급이던 사람이 장애 5급으로 등급 하락했다. 만약 ‘합리적 의심’을 발휘해 공단이 실태조사라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공단이 답변에 응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공단에 책임의 몫이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가. 등급의 잣대를 들이미는 공단은 장콜을 타느냐 못 타느냐에 목숨이 걸린 소외된 중증장애인에게는 이미 '국가'요 '하늘'일 것이다.
‘운 좋은’ 민 씨는 이번에 등급을 회복해 서비스를 받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운 나쁜’ 또 다른 어떤 중증장애인은 장콜을 이용하지 못해서, ‘싸우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어딘가에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갈 것이다.
-장애인의 주홍글씨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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